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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트렌드]축산물 등급제 개정 골라 먹는 시대 ‘돼지고기 등급제’의 진화
2019-09-30


 

최근 한돈협회는 돼지고기 등급제도 개선을 요청했다. 제도 도입 이후 6년 이상 지나면서 소비자 기호 변화, 다산성 모돈 증가 등 달라진 트렌드에 맞춰 등급제 개선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커졌기 때문이다. 돼지고기 등급제 개편이 소비자에게는 고기의 맛을 보장하고 생산자에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줘 한돈산업의 성장을 이끌 ‘신의 한 수’가 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글. 윤진아 문화칼럼니스트

 

시장 변화에 맞춰 축산물 등급제 개정 논의 활발

축산물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 돼지고기 시장의 변화도 뚜렷하다. 스페인산 ‘이베리코’, 미국산 ‘듀록’·‘버크셔’ 등 품종별 고유의 맛을 음미하는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삼겹살, 목살, 항정살 등 돼지고기를 부위로 구분해 먹는 시대가 기울고 있다. 새로운 스펙의 고기 등장, 시장의 분화 등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앞에서, 최근 축산물 등급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올해 12월부터 개정된 소고기 등급제가 시행된다. 정부는 지난 1993년 소고기 수입개방에 대비하고 축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소고기 등급제를 처음 도입했다. 소고기 등급제는 그동안 생산·유통·소비업계와 시장 여건을 반영해 여러 차례 보완과정을 거치면서 한우 개량 촉진과 품질 고급화를 견인해 왔다. 이후 소고기 도체 등급 기준은 생산 농가에게는 표준적인 사육 목표가 됐고, 소비자에게는 구매 판단기준이 됐다. 그러니까 생산 농가는 등급 간 가격 차이로 소비자의 니즈를 알게 됐고, 소비자에게는 고기의 품질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된 셈이다.

 

이번에 개정되는 소고기 등급제는 1++ 등급에 마블링 스코어를 병행 표기함으로써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히고, 맛의 차이를 미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보완했다. 정보 공개의 폭을 넓힌 만큼, 또 다른 소비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란 기대도 모이고 있다. 마블링(marbling)은 육류의 지방분포율을 뜻하며, 마블링이 풍부할수록 고기의 육즙과 풍미, 부드러움이 더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소고기의 근내지방 함량이 적더라도 1++ 판정을 내릴 수 있도록 축산물 등급판정기준도 개정했다. 근내지방도 기준을 완화하면 농가의 소 사육기간을 단축할 수 있고, 이는 곧 경영비 절감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지금까지는 근내지방도 위주로 소고기의 육질등급을 평가했지만, 앞으로는 근내지방 이외에도 육색, 지방색, 조직감 등을 개별적으로 평가하고 그중 최하위 결과를 최종 등급으로 결정하는 ‘최저등급제’를 올 12월 1일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한우시장은 마블링 스코어만 따지는 한우고기가 한 축을 담당하고, 다양한 이력과 스토리를 내세운 한우고기가 또 다른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소고기 시장이 기존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의 기호와 개성이 중심이 되는 시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돼지고기 등급제 개편 필요한 이유

돼지고기 등급제도가 변화의 길목에 서있다. 돼지도체 등급 판정기준을 현실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는 여론은 그동안 꾸준히 확산해왔다. 현행 등급이 가공·유통과정에서 품질을 구분할 수 있는 절대기준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도입 이후 단 한 차례의 개정도 이뤄지지 않아 소비 트렌드 변화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현행 돼지고기 등급제도는 고기의 품질 정도와 도체중, 등지방 두께, 외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1+, 1, 2등급으로 구분한다. 115kg 기준으로 등지방 두께가 핵심이다. 등지방이 두꺼우면 낮은 등급이나 등급 외 판정을 받는다. 결국 생산성에 초점을 맞춘 3원 교배종만 다루게 돼 품종의 다양화가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다. 소위 ‘한국판 이베리코’가 나오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돼지고기는 온도체 상태에서 등급판정이 이뤄지는 여건상 육질과 결함 여부를 면밀히 살피기 어렵다. 이에 따라 등급별 품질 변별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여기에 최종 소비단계에서조차 등급별 품질 변별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분석도 개편 논의에 힘을 실었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돼지고기 구매 시 1+등급이 1등급보다 크게 낫다고 여기지 않는 게 현실이다. 돼지고기 등급제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 소비자 선택기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반해 소고기는 마블링 등 품질 차별화가 뚜렷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등급제 신뢰도가 두터운 편이다. 또, 가격이 높은 상위등급 원료육은 가공·판매할 때 그 품질과 가격이 반영돼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도 문제로 꼽혀왔다. 실제로 육가공 업체들은 1+등급이라고 해서 더 높은 가격으로 납품하고 있지는 않다.

 

지난 5월 대한한돈협회는 돼지 성별에 따라 성장일령에 따른 등지방 두께 형성이 다른 현실을 감안, 암수 특성을 고려한 등급기준 마련과 함께 육질 등급 강화를 주요 골자로 하는 건의안을 마련했다. 한돈협회 측은 돼지고기 등급판정 기준으로 암수 구분 등급, 등지방 두께 조정, 다산성 모돈 특성 반영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축산물품질평가원에 요청했다.

 

한돈 돼지고기 등급제 개편으로 반등 노리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7년 국내 1인당 돼지고기 소비는 10년 전보다 약 28% 늘었다. 같은 기간 닭고기는 55%, 소고기는 49% 증가했다. 다른 축산물들이 약진하면서 돼지고기의 비중은 54.2%에서 50% 밑으로 내려갔다.

 

소고기는 수입산이 들어와 가격이 내려가면서 접근성이 좋아졌고, 닭은 ‘치맥’(치킨+맥주) 인기의 영향으로 소비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최근 수입 돼지고기가 빠른 속도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그러니 한돈의 고급화·차별화 전략이 시급하다는 데에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이런 중에 돼지고기 등급제 개편이 수면으로 떠 올랐다. 돼지고기 등급제가 생산농가와 소비자, 유통업자 모두에게 이롭고 효율적인 기준이 돼야 하는데, 현실의 돼지고기 등급제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물론 돼지고기 등급제를 개편하려면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소비자 선호도에 따른 등급제가 확립되도록 판정 기준 조정이 필요하고, 고품질은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게 해 농가의 동기를 높여야 한다”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고기 맛에 정답은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선택이다. 확실한 건, 시대가 변했고 그간의 관행을 넘어서는 새로운 길을 모색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정된 제도가 한돈 품질 향상으로 이어져 소비자에게 고품질의 돼지고기를 공급하고 양돈산업을 발전시키는 견인차가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한돈협회 측은 돼지고기 등급판정 기준으로 암수 구분 등급, 등지방 두께 조정, 다산성 모돈 특성 반영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축산물품질평가원에 요청했다.